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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J] 내향 직관 백분 활용하기

멜리비 2019. 6. 5. 07:56

나의 주기능이 Ni (내향 직관)라는 것을 알았다면, 주기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그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융의 심리 유형론에서 정의하는 8차 기능 중 개념이 가장 애매모호한 것이 Ni다. Ni의 특징으로 흔히 8차 기능 중 무의식에 가장 가까운 기능이라는 것, 따라서 Ni를 주기능으로 사용하는 사람 조차 그 과정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 Ni를 주기능으로 사용한다면 통찰, 직관 능력을 가진 것으로 보이며 때로는 예언가적인 기질도 보일 수 있다는 것 등이 꼽힌다. 하지만 실제로 Ni를 사용하는 과정을 언어로 묘사하거나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나는 INFJ 유형으로 판명된 사람으로 주기능이 Ni이다. 내가 대체로 세상과의 기묘한 괴리를 느끼며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 말고는 내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Ni를 활용하고 있는지 콕 찝어 말은 못하겠다. 다만, 최근에 읽어본 Ni에 대한 해석 중 가장 와 닿은 설명은 Lenore Thomson의 글에서 인용된 “상자 자체를 이해하려 한다”는 말이었다. Ni를 주기능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상자 안에 있는 사람(Se, Si)과 달리 주어진 규범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않으며, 상자 밖으로 나가려는 사람(Ne)처럼 언제나 규범을 깨거나 튀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단지 그 상자가 어떤 모양으로 생겼는지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고 또 이해하려는 끊임 없는 욕구가 있다는 말로 내 상태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초코렛 한 상자를 사와서 안에 있는 초코렛을 먹는 것보다 포장 상자에 관심이 더 많은 기이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Ni를 대체 어떻게 활용해야 할 것인가? Ni를 나의 주 무기로 집어 들었다면 그 무기를 제대로 휘두르면서 세상을 헤쳐 나가야 할 것 아닌가? Ni를 Se나 Te처럼 휘둘러 대 봤자 결과는 낭패라는 것을 이미 경험을 통해 알아버렸으니 말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Ni를 “활용”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Ni는 무의식의 영역에 있는 기능이기 때문이다. 내가 의식적으로 나의 무의식을 조정하거나 통제할 수는 없다. 다만, Ni가 제 할 일을 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가 아닌가 싶다. Ni가 제 힘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장애물을 전부 옆으로 치워두는 정도가 될 것이다.

Ni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상태는 경험상 자신의 느낌에 따라 살 때 최적으로 만들어지는 것 같다. 이를테면 순간순간의 감정이 아닌, 마음 속 깊이 느껴지는 그런 직감 같은 것 말이다. 이성적인 판단, 논리, 사회 관습 등에 따르지 않고 오직 자신만의 나침반에 따라 살아갈 때 Ni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 같다. 이런 상태에서 Ni가 서서히 근육을 키워나가며 내가 세상 속에서 효과적으로 기능하는 데 필요한 틀들을 하나하나 구축해 나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나는 머리로만 이해한 사실, 또는 남들이 알려주는 지식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고 무엇이든 ‘진리’로 느껴지며 가슴에 와 박히는 그 순간이 올 때까지 판단을 보류했을 때에 가장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던 것 같다. 외부에서 주어진 사실들을 하나 둘 흡수해 나가다 보면 상자가 윤곽을 서서히 드러낸다. 상자가 어느 정도 모양새를 갖추고 나면 그 안에서 나는 자신감 있게 무슨 일이든 추진할 수 있게 되며, 때에 따라서는 상자 안과 밖을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이 상태가 되고 나면 어떤 상황에서든 대처가 빠르며 일 처리도 빠르다. 나는 이런 상태를 이른바 ‘내공이 쌓인 상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 느낌이 올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또 한 가지 Ni의 활동을 촉진 시킬 수 있는 방안으로 Ni에게 다양한 외부 정보를 제공하는 방법이 있다. 즉, Ni라는 실체 없고 통제 불능인 ‘괴물’에게 충분한 ‘먹잇감’을 주는 것이다. 융의 Ni에 대한 정의에 따르면 Ni는 주어진 정보 중 일부만 선별적으로 받아들여 스스로 주관성을 부여한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렇듯 Ni는 이미 그 자체로 정보 인식 기능이지만,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 일부 받아들이고 그나마 받아들인 것도 좋게 말하면 주관성을 부여하고, 나쁘게 말하면 왜곡하여 자신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한다고 볼 수 있다. 자칫하면 현실과의 심각한 괴리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과정이다. 무의식에서 벌어지는 일을 막을 방법은 없지만, 그나마 객관적인, 즉 외부에서 오는 정보를 충분히 제공한다면 현실 세계에서도 타당성을 인정 받을 수 있는 상자를 구축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하지만 Ni에 주어야 하는 정보는 단순 Fact가 아니다. 내가 지금까지 자연스럽게 궁금해 했던 것은 관점과 의견, 평가와 같은 요소들이었다. 무엇이 가치 있는지, 무엇이 좋은지 등등 가치 평가 및 체계에 대한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타당성 있는 통찰이 가능한 것 같다.

살아보니, Ni를 주기능으로 삼아 세상을 바라봐도 결국 인식과 판단 기능이 다를 뿐, 인간이기에 겪는 기본적인 희로애락을 피해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각 유형마다 길은 달라도 결국 같은 산꼭대기에 도달할 것만 같다. 다만 길을 가면서 왼발을 먼저 내민다는 것이 나에게는 더 쉬운 일이고, 남들이 뭐라 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와 끈기를 배우는 것 같아 MBTI 유형론에 대해 계속 공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