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J] 외향 감각은 현실 세계의 법칙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차 나는 이 세상에 무엇을 기여하였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적인 의미에서의 성취와도 연관되기는 하지만, 또 한편으로 조금 더 넓은 의미에서, 내게 가장 어울리는 역할은 무엇인지, 더 깊이 들어가서는 나는 어느 곳에 있어야 할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까지도 이어지네요. INFJ에게 내향 직관이 관장하는 내면 세계는 마치 끝없이 이어지는 불꽃놀이처럼, 쉴새 없이 색채와 소리와 감정과 고민을 생산해 냅니다. 하지만 외부와 단절된 채, 내면의 세계에만 더욱 깊이 파고 드는 INFJ는 현실과의 연결감을 잃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런 INFJ의 직관은 쓸모가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아니, 이런 INFJ 자체가 세상에 유용한 존재가 아니게 됩니다.
INFJ에게 외향 감각은 어찌 보면 사실 관계, 혹은 팩트 (Fact)를 의미합니다. 10-20대 때까지는 외향 감각이 오감으로 느껴지는 모든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갑자기 전면으로 나서는 외향 감각은 불편하고 기피해야 할 나의 한 부분이었고, 억누르느라 바빴었죠. 하지만 경험이 쌓일수록, 외향 감각이 왜 중요한지 점차 그려지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외향 감각은 단순 사실 관계라는 점점의 데이터보다 훨씬 넓은 의미에서 현실 세계의 법칙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적어도 그 현실 세계의 법칙을 인지할 수 있는 연결고리 정도라고 보는 게 맞겠네요. 어느 유형이든, 가장 불건강할 때에는 외향 기능과 내향 기능이 균형을 잃었을 때라고 하죠. INFJ가 외향 감정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게을리하고, 외향 감각을 통해 사실 관계 확인을 건너뛴다는 것은 곧 현실 세계와의 접점을 모두 포기하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내향 직관은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INFJ는 자기만의 법칙을 세워 "내가 맞고 모두 다 틀렸어"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점점 고립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부터 나와 결이 다른 집단 속에서 상처와 오해와 거리감으로 점철된 경험들이 쌓이다 보면 나만의 완전 무결한, 그리고 정겹고 익숙한, 내향 직관이 지어낸 세계에만 머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내가 이 사회에 무엇인가를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외부 세계로부터 날라오는 '팩폭'들에도 언제나 열린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조금은 귀찮은(?) 현실도 인정해야만 하는 것 같습니다.
외향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살려두려면,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 법을 연습해야 합니다. 저는 내향 직관-외향 감정 조합으로 꽤 다양한 상황 속에서 그럴듯하게 대처할 수 있으며, 상담하는 동안에도 상대의 미세한 감정 변화를 읽어내는 것에도 나름 능숙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작 나와 세계관이 맞는 사람을 찾아내어 그 관계를 지속하는 능력은 떨어집니다. 상대방이 부족하여 내가 자동으로 쓸모가 있어지는(?) 그런 상황에 자주 맞닥뜨리는 편이며, 내가 온전한 나로 관계를 맺어 오래 이어간 경험은 미미합니다. 외향 감정을 순간의 상황을 이끌어가는 것에만 활용하고, 대등한 관계에서 서로의 갈등을 풀어가본 경험은 오히려 미미합니다. 누군가 나에 대해 비난하는 것이 아직도 상당히 불편합니다.
외향 감각을 활용한다는 것은, 최근 들어 특히 더, 현실 세계의 법칙을 공부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10-20대 때는 고고한 고전 문학 서적을 많이 보았다면, 요새는 지극히 현실적인, 노하우를 가르치는 책이나 블로그나 유튜브를 찾아 열심히 듣습니다. 뭘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 법칙을 알고 나면 이 세상이 한층 더 예측 가능한 곳으로 변신해 가는 것이 느껴집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오직 나의 내면 세계만이 아닌, 외부 세계에도 점차 설자리가 생기는 기분입니다.
외향 감정이든 외향 감각이든, 외부로부터의 피드백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따라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억누르게 되더라구요. 피드백은 아픕니다. 때로는 아주 많이 아프죠. 그래서 상대방이 나를 몰라서 그런거라고 스스로 둘러대기도 하고, 상대방을 깎아내림으로써 스스로 위안 삼기도 하고, 그냥 다 귀찮다며 나만의 세계로 도로 들어가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객관적인 사실에 대해서만큼은 깎아내리거나 등을 돌려서는 안되더라구요. 그런 전략이 안 먹히더라구요.
오늘도 저는 다시 한번 다짐합니다. 현실 세계와 나란히 손잡고 가야만 하고, 지금처럼 때로는 엇박자가 나더라도 결코 그 손을 놔버려서는 안된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