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J] INFJ 여자와 7가지 원형
INFJ는 여자든 남자든, 사회의 전통적인 여성상/남성상에 언뜻 보기에 들어맞는 듯하면서도, 조금만 깊이 파고 들면 묘하게 어긋나는 경우가 많아, 주변 사람들도 헷갈려하고, 자기 자신도 헷갈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INFJ 여자는 어떤 면에서는 정말 여성스러운 취향을 가지고 수동적이면서 수용적인 태도를 취하는 반면, 한편으로 상황에 따라 아주 냉철하게 대처하고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기대하는 여성의 모습에 부합할 때는 주변과의 마찰은 적지만, 나를 축소해서 평가하는 사람들에 대해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반면 사회적으로 여성의 사고나 행동 패턴이라고 보기 어려운 면을 드러내기라도 하면, 주변에서 평가 절하하려 들거나, 왜곡해서 보는 경향도 있어, 이 또한 상처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저는 30대 후반부터는, 특히 결혼에 대한 압박이 시작되면서, 여성성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 하에서는 아무래도 여성성을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여성스럽다는 것은 신체적으로도 남성에 비해 약하지만, 논리력이나 비판 능력 또한 남성에 비해 뒤떨어지기도 하며, 감정에 지나치게 휘둘린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은 암묵적으로 학습합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여성들은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보다는 가부장적인 질서에 순응하거나, 아예 남성적인 특성을 체득하여 사회 생활을 해나가야만 하는, 둘다 그닥 탐탁치 않은 선택지에 맞닥뜨리게 되죠.
정신과 의사이자 융 분석심리학자인, 일본계 미국 여성 Jean S. Bolen 교수는 융의 원형 개념을 여성의 입장에서 발전시킨 것으로 유명합니다. 저 또한 이 책을 여름 휴가 기간 동안 3일 만에 읽었는데, 너무너무 공감되는 내용들이 많아 정리해보았습니다. 무엇보다, 프로이트와 융의 분석 심리학자들이 제시한 이론 속에서는 여성성은 반드시 남성성과의 관계 안에서만 규정해 왔습니다. 하지만 Bolen 교수는 여성성을 더욱 세분화하여 7가지 원형으로 규정하면서, 이중 4가지 원형은 남성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나머지 3가지는 남성과는 무관한, 스스로 온전한 원형으로 규정했습니다. Bolen 교수는 각각의 원형을 상징하는 그리스 신화의 여성을 선택하여 각 원형을 아래와 같이 정리했습니다:
- 아르테미스 (사냥꾼): 목표가 뚜렷하고 남성과의 관계를 거부하며 자신의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독립적인 여성
- 아테나 (학자): 목표가 뚜렷하고 전략적으로 남성들의 세계에 스스로 편입하여 목표를 이루어내는 참모형 여성
- 헤스티아 (여사제): 내면의 영성에 온전히 몰입하며 살아가는 신비로운 여성
- 헤라 (아내): 남편과의 관계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전형적인 사모님의 모습을 갖춘 충성심 강한 여성
- 데메테르 (어머니): 모성이 강하여 자식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한없이 베풀기 좋아하는 전형적인 엄마 같은 여성
- 페르세포네 (딸): 순수하고 수용적인 태도를 갖춘 전형적인 소녀와 같은 여성
- 아프로디테 (연인): 현재를 즐기고 자신의 즐거움을 최우선시하며 남성 뿐만 아니라 주변인 모두를 끌어들이는 카리스마를 가진 매혹적인 여성
Bolen 교수는 이중 첫 3가지 유형 (아르테미스, 아테나, 헤스티아) 은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인 체제에서 규정하는 엄마, 아내/연인, 딸의 전형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스스로 온전한 유형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저는 바로 이 3가지 유형에 대해 읽으면서, 사회에서 규정한 성역할을 넘나드는 INFJ 여성으로써 스스로를 조금 더 인정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이중에서 특히 아테나 원형에 스스로 가깝다고 느낀 적이 많습니다. 여성보다는 남성들과 대체로 말이 더 잘 통하고, 여성들의 감정 기복이나 수동적인 태도를 무의식 중에 하찮게 여기기도 하며, 계획적이고 전략적인 활동에 심취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이기적이거나 차갑거나 부자연스럽고 남성적이라고 이해하기보다는, 이 또한 여성성의 한 가지 표현일 수 있다는 생각이 위로가 되고, 내적인 갈등을 조금이나마 완화시켜 줍니다. 추가로, 헤스티아 원형은 아마도 내향 감정이 우세한 INFP나 ISFP와 같은 유형을 떠올리게 하며, 아르테미스 원형은 아마도 우리 사회의 모든 T 여성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Bolen 교수는 이후에 남성의 원형에 대한 책을 쓰기도 했는데, 이 책도 조만간 읽어볼 예정입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 전통적인 여성상이나 남성상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스스로를 더욱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마음이 드는 아침입니다.
참고
Bolen, J. S. (2014). Goddesses in everywoman: Powerful archetypes in women's lives. Har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