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비행기를 타고 한국과 캐나다를 오갈 일이 있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일정이 꼬여, 오며 가며 항공권을 4번에 걸쳐 취소하고 다시 예약해야 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평소 여행하면서 이런 일이 한번도 없었는데, 어쩌다 이 정도로 일이 꼬였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가장 스트레스를 받았던 순간은 각종 항공권 비교 사이트에 들어가서 여러 항공권의 장단점을 비교하여 선택하면서였습니다. 항공권 비교 사이트의 경우 날짜가 임박해서 표를 끊으면, 시간을 끌면 끌수록 가격이 올라가게끔 알고리즘이 설정되어 있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제 머리 속에는 항공권을 꼼꼼하게 따져보고 비교해 보아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따져보아야 할 것을 따지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되돌아 보니, 저에게 그런 방식은 오히려 독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ISFJ가 아니므로. 그런 강박을 가진 순간부터 내향 직관은 오프라인이 되었고, 어둠 속을 헤매는 기분이 들더군요. 그래서 가족들에게 차례로 전화를 해가며 의견을 물으며 갈팡질팡 (외향 감정), 의사 결정에 필요한 체계를 잡으려 노트에 메모도 해가면서 (내향 사고), 순차적으로,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려 하는데 (외향 감각), 결국 남은 것은 어쩌다 보니 가장 비싸고 일정도 별로인 항공권이었습니다.
허탈했습니다. 나는 “모범적인” 방식으로 최선을 다했는데, 예전에 느낌 따라, ISFJ 친구들이 혀를 끌끌 찰 방식으로 후다닥 일을 진행하던 무모한(?) 나보다도 훨씬 못한 결과를 얻었으니 말이죠. 신기하게도, 마지막에 가서 조건이 그나마 나은 표를 끊으려는데, 뱃속이 불편하게 이러저리 꼬이는 것이었습니다. 그 불편한 느낌을 과감하게 짓누르고 표를 결제하려는 순간, 항공사에서 전화가 와서 환승하는 국가에서 비자 정책이 오늘 부로 바뀌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중국이 최근 우리 나라와 사이가 안 좋아졌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이 비자 문제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는데, 위험을 감지한 내향 직관이 배를 통해 신호를 전달한 것이었을까요.
이 일이 있기 전까지, 저는 외향 감각이 주는 평온한 매력에 푹 빠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40대가 된 저에게 외향 감각은 안식처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상담사 친구들과 일상을 나누면서, 그리고 웰빙에 대한 관심이 높은 밴쿠버에 살면서 현재에 충실하기, 생각에 빠지지 말고 오감에 집중하기 연습을 많이 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에서 다 그렇게 하면서 사니까요. 산책하면서 새도 보고, 꽃도 보고. 현재에 집중하며 음식을 했습니다. 때로는 청소를 하면서 일종의 희열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항공권을 4번 끊는 과정을 거치면서, 외향 감각과 내향 직관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생각이 문득 듭니다.
정신과 물질의 양간에 발을 걸치고 갈등할 수 밖에 없는 INFJ. 외향 감각에 가끔 운전대를 온전히 넘겨줄 수 있는 요즘, 그 외향 감각이 더 이상 두살배기 꼬마가 아니라 이제 말도 좀 통하는 10대 초반의 청소년이 되었다고 느낍니다. 외향 감각에 심취했을 때의 그 아늑함은 어쩌면 어른으로서의 본업이 아닌 어린이와 같은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이기도 한 것 같구요. 하지만 위기가 닥쳤을 때에는 얼른 그 운전대를 도로 빼앗아 오는게 좋다는 것을 이번 일을 통해 학습한 것 같습니다.
내향 직관도 점차 익어감이 느껴집니다. 뇌의 무수히 많은 회로들 중, 지난 40년간 무의식적으로 키워온 신경들이 이제는 제법 알아서 돌아갑니다. 그래서 가끔은 여유를 부리며 어린이 같은 마음으로 돌아가 외향 감각으로 세상을 즐기기도 하며 균형을 잡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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