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J] INFP 관찰기

최근에 INFP로 추정되는 한 젊은 친구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INFP가 세상을 어떤 방식으로 경험하는지, 그들이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어떤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을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INFP에게는 늘 매력을 느껴 왔습니다. 대체로 겉으로는 유순하고 센스 있고 유쾌하게 살아가는 그들이지만, 내면에서는 갈등도 많고, 필요할 때에는 놀라울 정도로 실행력도 갖춘, 뭔가 핵이 단단한 느낌의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늘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자기만의 기준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아왔습니다. 상황에 맞게 적응하는 INFJ와 달리, 내면의 호불호가 강한 INFP를 대할 때에는 항상 그 기준이 무엇인지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 늘 궁금해 해왔습니다. 

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내향 감정이 주기능인 INFP는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놓인 순간마다 어떤 '느낌'을 찾는 것 같았습니다. 이들은 누구나 알만한 그런 근거를 저울질하며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기 내면에서 무질서하게 떠돌아다니는 행성들이 어느 순간 정렬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기 전까지는 어떠한 일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더군요. 아주 간단한 일상 속의 일들 조차도, 마음이 정해지기 전까지는 마치 뛰어넘어야 할 어마어마한 장애처럼 경험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녀가 기다리는 것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순간의 '기분'들이었습니다. 그녀의 내면은 마치 인상파 화가의 그림 같았습니다. 

내향 감정형인 그녀에게는 어쩌면 그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의 결과를 함께 점검해보고, 논리적으로 전략을 세워서 장애물을 하나하나 넘어서려고 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을 것입니다. 내향 감정형인 사람에게는 우선 '딱 이거야'하는 느낌이라는 첫 단추가 끼워져야만 그 다음 단계의 일들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INFP는 부기능으로 외향 사고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일단 결단을 내리고 나면 무섭도록 현실적으로, 효율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첫 '느낌'이 반드시 맞아 떨어져야만 합니다. 

저 같은 INFJ를 포함하여, 결과 지향적이고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면이 강한 사람들은 우선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고 보자는 식으로 나오기 때문에, INFP 입장에서는 안그래도 '느낌'을 찾지 못해 답답한데 주변에서 자꾸 뭐라도 하라고 닥달하니, 스트레스는 쌓여가고 자존감도 낮아질 수 있습니다. 주변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감정형에게는, 문제 해결식의 대화보다는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봐주고 인정해주는 식의 대화가 안정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주변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고, 어떤 일이 닥쳐도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을 때에 자존감 또한 올라간다고 합니다. 반대로 주변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돌아가고,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일이 내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우리는 세상을 위험 가득한 곳으로 경험하게 되고 불안을 느끼게 되며,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되다 보면 우울감마저 들기 시작하고 무기력해지기도 합니다. 감정형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은 주변과의 조화인 것 같습니다. 모두가 서로서로 북돋아 주며, 서로 좋게 바라봐주고, 함께 행복해할 때, 감정형은 위험 가득한 세상에 대처하기 위해 사용 중이던 정신력을 창의성을 발휘하는데 돌릴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준답시고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에 대한 방어를 풀고, 힘을 빼고, 내면이 살아나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역설적으로 현실적인 문제 해결 능력이 살아납니다. 

반면, 사고형에게는 오히려 이성과 논리로 주변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때에 안정감을 느끼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결과, 현실적인 대처법, 가지런히 정리된 논리적인 모델만큼 세상에 안정감을 주는 것이 또 있을까요. 사고형에게는 오히려 무질서해 보이는 감정의 세계는 위협적으로 느껴지기도 할 것입니다. 가끔 사고형의 내담자를 만났을 때에는, 감정을 뇌과학과 신경과학을 동원하여 설명했을 때에 긴장을 풀고 호기심을 가지고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INFP 친구는 결국 자신이 원하는 조화로운 환경을 스스로 조성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환경이 조성되어 나가면서, 그녀의 사고가 놀랍도록 성취 지향적으로 바뀌어 나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결국 감정형은 '느낌'이라는 첫 단추가 제대로 끼워져야 안정감이 생기고 자신의 정신력을 온통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반면, 사고형은 논리성과 현실성이 갖춰져야만 그 이면의 감정적인 소통 또한 가능해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