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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r Maze] 직관이란 무엇인가

멜리비 2019. 6. 1. 11:58

원문 보기 : https://www.stellarmaze.com/what-is-the-intuitive-function/

모든 과학자들, 그리고 객관주의자들에게 직관은 크나큰 문제입니다. 직관 기능은 그 자체가 생명의 촉매제이자 영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모든 기능 중에서 가장 우위에 있는 기능이기도 합니다.

직관 유형들은 이 기능의 이해를 돕기는커녕, 어떤 문제에 대한 답으로 “그냥 느낌으로 알게 되었어요,”라고 답함으로써 혼란을 가중 시키기도 합니다.

직관 기능이 없다면 다른 어떤 기능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직관 기능이 가장 오해를 많이 사는 이유는 이 기능 만이 유일하게 이분법을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이분법이란 이성의 기반이며, 융의 용어를 빌리자면 사고 기능입니다.

직관 기능은 알고 보면 인식의 한 유형으로, 감각 기능과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고 기능과 달리, 직관 기능을 활용할 때에는 결론을 내기 위해 따지고 잴 필요가 없습니다. 직관 기능은 감각 기능과 마찬가지로, 현실을 직접 받아들일 뿐입니다. 하지만 감각 기능을 활용할 때에는 어떤 결론에 도달하더라도 그 과정을 문제 삼지 않습니다. 사물을 보고 있을 때에는, 그저 볼 뿐입니다. 소리를 들을 때에는, 그저 들을 뿐입니다. 직관 기능은 감각 기능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면 됩니다. 다만 직관을 통할 때에는, 현실에 존재하는 것을 보기도 하지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생각이란, 언어를 통해 용어를 정의하고 그 용어의 순서를 정함으로써 설명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논리적이거나 수리적인 생각에 대해서는 아주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기도 합니다.

지적인 능력은 어느 정도 직관적입니다. 지적인 능력을 정제한 것이 사고 기능입니다만, 지적인 능력이 품고 있는 원초적인 에너지는 직관적입니다.

직관 기능이 강력한 이유는 어떤 통찰에 이르기까지 논리적인 단계를 모두 건너뛰고 순간적인 영감을 통해서만 그곳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나아가서는, 직관을 통해 다다를 수 있는 통찰의 영역은 논리를 통해 접근할 수 없다고 장담합니다. 왜냐하면 직관은 인식 기능이기 때문입니다. 사고 기능은 인식하지 않고, 이미 가지고 있는 정보에 대해 판단하는 기능입니다.

사고 유형의 사람들은 직관 기능을 경계합니다. 직관 기능은 신념과도 결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신념은 이성적인 근거로 뒷받침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념을 가진 사람은, 진실을 보았기 때문에 자신이 옳다고 믿습니다. 그리하여, 역사적으로 피비린내 나는 많은 종교 전쟁도 결국 알고고 보면 직관 유형들에게 책임이 돌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필자는 직관 유형들이 직접 이런 만행을 저지른다기 보다는, 직관 유형들이 내놓은 교리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 주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한 목사들의 다양한 해석처럼 말이죠. 그렇다고 직관 유형의 사람들이 타인을 해친 적이 없다고 자신하지 않습니다. 다만, 직관 기능 자체가 도덕성을 초월하고 있다고는 봅니다. 도덕성은 오히려 판단 기능들, 즉 사고 기능과 감정 기능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됩니다.

직관 유형의 사람은 본질적으로 옳을 수는 있어도, 다른 의미의 단계에서는 그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화 [스카페이스]의 토니 몬타나의 대사처럼, “나는 언제나 진실만을 이야기한다. 거짓말을 하고 있을 때에도 말이다.” 직관은 옳고 그름의 이분법적인 의미에서 결코 틀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직관을 통해 인식하는 것들은 옳고 그름의 차원을 이미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직관 유형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틀린 것은 오직 영적인 영역을 반대하는 모든 것입니다. 영적인 것이란, 수학에서는 통합의 개념입니다. 모든 숫자에 포함된 공통된 숫자 말입니다.

직관 유형의 관점에서 보면 “옳고 그름”, “진실과 거짓”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직관 유형의 사람은 사실 관계를 틀렸다 하더라도 어딘가에 진실이 있습니다. 만일 세상 사람들이 모두 저 나무가 단풍나무라고 이야기 한다면, 직관 유형의 사람이라면 충분히 저 나무가 단풍나무일 수는 있지만, 사실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 단풍나무는 그저 감각의 탈을 쓰고 있는 허상일 뿐이라고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특히 내향 직관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향 직관 유형에게 감각적인 현실은 그저 진실을 덮고 있는 하나의 얇은 막일 뿐입니다.

직관 기능과 第一

직관 기능은 第一입니다. ​당신이 하나를 가지고 있다면, 아직 정신은 없습니다. 정신은 적어도 두 가지를 가지고 있을 때에 생겨납니다. 그래야만 비교하고 대조할 것이 생기고, 자아와 타자를 구분할 이유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직관 유형에게는 모든 것이 자아이고, 이 자아로 인해 주관성이 생겨납니다. 주관은 스스로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무엇이든 기준을 일단 삼습니다. 그것이 자신이 되었든 타자가 되었든 말입니다.

지식의 본질은 기본적으로 객관적입니다. 지식은 어디까지나 제 二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즉, 사고 기능에 해당하죠. 제 二는 원초적인 객관성을 나타냅니다. 객관적이라는 것은 관찰자가 외부에서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직관이 판단 기능을 뒷받침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일의 순서가 뒤바뀌었기 때문입니다. 판단은 절대 인식을 앞서서는 안됩니다. 편견 (“prejudice”)이라는 단어가 바로 인식을 하기 전에 (“pre-“) 판단하는 것 (“judge”)을 의미하지 않습니까.

인식은 결코 틀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판단은 종종 틀리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사고 기능은 언제나 판단 착오의 가능성을 안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틀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직관은 아직 온전히 하나이고, 아직 제 二가 분리되어 나가기 전의 것이므로 틀릴 가능성을 아직 내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사고 기능이란, 판단 오류와 관련이 깊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가 틀리다는 전제 하에 성립할 수 있는 기능이니깐요.

요약

요약하자면, 여기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직관 기능은 지식이나, 사고 기능, 혹은 이성의 상위에 있는 기능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지적인 능력의 모태로써, 혹은 이성의 원동력으로써, 직관은 객관적인 사실의 뒷받침 없이도 주장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직관 기능은 오늘날 우리가 그토록 애정하는 사고 기능의 전제가 되기 때문에, 반드시 그것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필자의 의견으로는 고대 그리스인들은 대체로 직관적인 사고를 했었고 (니체의 [비도덕저인 의미에서 진실과 거짓] 참고), 우리의 과학적인 방법론이 전부 고대 그리스인들로부터 받아들인 것이므로, 우리 또한 직관적인 사고를 중시해야만 한다고 봅니다.

주체는 객체에 앞섭니다. 객체를 관찰하고 판단할 주체가 없다면 객관성 또한 있을 수 없습니다. 제 一의 존재 없이는 제 二가 존재할 수 없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제 二 없이도, 제 一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주체와 객체를 각각 제 一과 제 二라고 본다면 저는 논리적으로 다음과 같이 주장하려고 합니다.

필자가 직관 기능에 대해 하려는 말은, 그리고 가장 먼저 직관 기능에 대한 글부터 쓰는 이유는, 직관이 여러 기능 중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정의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직관을 정의하기 어려운 이유는 직관이란 이미 사고의 영역을 넘어선 기능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직관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사고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고를 통해 직관에 대한 이해에 도달한다는 것은 모순되는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미적분을 통하듯 한계점을 찾으면서 이 기능을 이해해나가는 방법은 있다고 봅니다. 주관적인 것은 틀릴 수 없습니다. 물론 반대로 절대적으로 옳을 수 없다고도 볼 수 있지만, 필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주관적인 것은 언제나 옳고, 객관성은 주관성과의 관계에 있어서 언제나 틀릴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우리는 원초적인 옳고 그름의 개념에 도달하게 됩니다.

지식에 관한 한, 과학의 영역 안에서는 한 가지 객관적인 지식과 다른 객관적인 지식 간에는 옳고 그름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의 관계에 있어서 객관적인 것은 언제나 틀립니다. 왜냐하면 객관성은 언제나 이미 온전한 주관성의 영역을 둘로 쪼개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과 저것을 구분하려 한다는 것이죠. 이렇듯 둘로 쪼개려는 행위는 원초적인 오류입니다.

자아만이 유일한 진실입니다. 객관성이란 자아를 자아와 타아로 구분하는 것을 말하는데, 후자가 결국 외부 세계를 의미합니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직관에 관한 한 증명의 의무를 면제해주기는 합니다만, 제가 하는 모든 말에 대해 정의를 명확하게 내리려는 노력을 계속 할 것입니다. 사고 기능은 중요하며, 이 블로그를 통해 사고 유형 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것이 큰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직관 기능이 근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