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J

[INFJ] 내향 직관의 정의

멜리비 2019. 6. 5. 07:59

출처 : http://greenlightwiki.com/lenore-exegesis/introverted_intuition

정의 [1] 표면적인 현상과 상징, 해석을 꿰뚫어보는 태도

내향 직관이란, 감각적인 관찰이나 묘사가 가능하도록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사실 실체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실체의 상징으로 실체를 짐작할 수 있는 해석을 가능케 하는 역할을 할 뿐이라는 태도를 지칭한다. 즉, 내향 직관은 표면에 나타난 현상보다는 그 이면의 실체에 초점을 맞추는 인식 기능이다. 표면적인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실체와의 연결고리는 어떤 것인지 파악하며, 나아가 그 한정된 연결고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면 어떤 가능성이 열리는가에 관심을 두는 것이 내향 직관이 가진 태도이다.

정의 [2]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인식하는 태도

내향 직관은 구조화되어 언어로 표현하기 이전의 실체, 즉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인식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예) 사람들이 직장에서 자신의 진솔한 감정을 밝히는 경우는 드물다. 동료들과 조화롭게 어울려 협력하며 일을 하고 그 대가로 월급을 받는 곳에서 자신의 감정을 거르지 않고 그대로 표현하는 사람은 예상컨대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므로, 대부분의 경우 직장인은 겉으로 표현하는 감정이 진짜가 아니라고 봐야 마땅할 것이다. 예를 들어 회계사가 회사에서 자신이 회계 업무를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그런 말은 무의미하다고 봐야 정확하다. 회계사 입장에서 업무에 대한 긍정적인 말이 아니라면 사실상 입 밖으로 내기 어려운 구조가 아닌가? 사람들이 진실로 느끼는 감정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하는 말 이면에 실제로 어떤 상태일지에 대해 초점을 잘 맞추어야만 한다. 그들이 느끼는 실제 감정은 그들이 입에 올리는 것과 매우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 지도를 만들 때 왜 북쪽 지방이 위쪽에 위치할까? 그 이유는 지도를 만드는 전통이 북반구에 사는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며, 북반구에 사는 사람들은 남반구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에 비해 덜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지도를 그릴 때 북쪽을 위쪽에 놓는 것은 어쩌면 유럽인이 아프리카인에 비해 우월하다는 인식을 은연중에 보여주고 것이다. 지도 자체만 놓고 봤을 때에는 이런 사실을 알 수 없지만, 지도의 구조를 한발 물러서 외부 관점에서 파악하고 관련된 사실을 들여다 봤을 때에는 분명히 드러난다.

예) 음악의 의미를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신의 실체는 무엇일까? 또 영혼은 무엇일까? 음악, 신, 음악은 모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언어로 나타낼 수 없는 실체를 내포하고 있는 개념들이다. 이런 실체를 언어로 표현하려다 보면 그 의미가 퇴색될 수 밖에 없다.

내향 직관이란, 실체에 대한 해석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왜곡을 “꿰뚫어보는” 기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좌뇌에서 기인하는 기능으로 지표나 상징에 초점을 맞추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해석 방법을 수용하기 이전에 그 해석 방법이 실체를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지 먼저 파악하고자 하는 태도이다. 내향 직관을 사용하는 사람은 어떤 상징 체계를 받아들이기 이전에 그 상징 체계의 전제들을 전부 파악함으로써 주어진 체제에 매몰되지 않고 그 체제 바깥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나아가 자유자재로 활용하거나 때로는 전제를 깨부수기 위해 그 해석을 역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정의 [3] 상징 체계 및 해석 방법을 파악하기

어떤 실체를 나타내는 표면 현상에 대해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해석이 있기 마련이며, 내향 직관을 이용하는 사람은 주변 환경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우선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해석이 무엇인지부터 파악한다. 이 과정 중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실체에 대한 해석이 유효한지에 대한 판단은 일단 유보한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해석은 사람들이 주로 기대하는 해석일 뿐이지,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는 것을 명백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향 직관 기능을 이용해 세계를 탐색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봤을 때 세상에는 남들이 기대하는 해석이 난무하며 그 해석 방법 자체를 탐색하는 과정을 통해 세상을 파악하게 되며, 이때 해석과 실체는 언제나 철저히 구분해서 생각한다.

예를 들어, 어떤 남자가 명품 이태리 슈트를 입었다고 가정하자. 외향 감각의 관점에서는 그 남자가 멋지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내향 직관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 남자가 명품 슈트를 입음으로써 나에게 자신이 상류층이거나 유능하다는 상징을 통해 멋지다는 인상을 의도적으로 주려고 했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명품 슈트가 나타내는 상류층 또는 유능함의 상징은 실체와 연관이 없을 수 있다는 사실을 또한 인식한다. 따라서 명품 슈트를 입은 남자의 모습을 보고 난 후에도 그의 실체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며, 결과적으로 그 남자가 멋지다는 생각이 사실상 들지 않는다. 명품 슈트 뿐만 아니라 그 슈트가 상징하는 실체 또한 철저히 분리해서 그저 하나의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실체에 대한 상징 체계 및 각 상징에 대한 기대되는 해석과 거기서 비롯된 반응으로 이루어진체제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내향 직관으로 세상을 파악할 수 없다. 기대되는 해석들과 상징 체계를 온전히 이해해야만 내향 직관을 활용할 수 있다. 그 체제를 이해하고 나서는 외부로부터, 즉 제3자의 입장에서 그 체제를 바라볼 수 있으며, 그 체제를 벗어난 상징 및 그에 대한 반응을 읽어내는 능력이 생기며, 그 체제를 운용하는 방식 또한 알게 된다. 우선 그 체제로부터 벗어나야만 그 체제를 진정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체제를 이해하고, 외부에서 그 체제를 바라보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릴 수도 있다. 기대되는 해석들을 하나하나 밝혀나가면서, 더욱 많은 숨겨진 전제를 발견하게 되고, 그런 전제와 거리를 둘 필요를 느끼게 되고, 그 모든 과정을 거친 연후에야 결론을 내리거나 행동을 취하게 된다.

정의 [4] 그냥 아는 것

내향 직관을 통해 “안다는 것”은 이성, 사실 관계, 증거, 상징에 대해 기대되는 해석, 표면적으로 나타난 현상 등을 하나도 거치지 않고 그냥 명백한 실체를 있는 그대로, “그냥 아는 것”이다. 자기 성찰을 통해 실체를 알게 된 경위, 즉 사고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고 과정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적절한 심리 상태를 유지하면서 내면에서 떠오르는 인식을 “그냥 아는 것”일 뿐이다.

예) 당신이 입사 면접을 보고 있다고 가정하자. 첫번째 후보는 스펙이 화려하고, 회사에서 정하는 모든 기준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두번째 후보도 스펙이 나쁘지는 않지만 첫번째 후보만큼 좋지는 않다. 하지만 첫번째 후보는 왠지 느낌이 안 좋고, 그저 그런 스펙을 가진 두번째 후보는 왠지 우리 회사와 잘 맞을 것만 같다. 왜 그런 느낌이 드는지에 대해 설명할 수 없는데다 그 느낌에 따라 내린 결론을 뒷받침할만한 증거도 없지만, 그냥 확신이 드는 것이다. 이런 근거 없는 확신을 믿는 것이 바로 내향 직관을 활용하는 것이다.

예) 동료가 아침에 전화해서 감기에 걸려서 출근 못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당신은 그 동료가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을 “그냥 안다.” 사실 그는 다른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간다는 사실을 “그냥 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콕 찝어 말하지 못하지만 그냥 확신이 든다.

예)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인간관계 문제가 됐든 수학 문제가 됐든, 모든 것이 얽히고 섥혀 도무지 실마리를 잡을 수가 없는 상황에서도, 어느 순간 문득 해답이 떠오르는 경우도 내향 직관을 활용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외향 직관을 사용할 때에는 생각의 범위를 넓힘으로써 사회적으로 정의된 상징 체계를 뛰어넘긴 하나 여전히 사람들의 생각과 확실한 연결고리는 남는다. “상자 밖의 그 무엇”을 제안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그 상자를 벗어나 생각하게 되었을 때 “우와”하고 느끼는 것을 즐기기도 한다. 반면 내향 직관을 사용할 때에는 상징 체계를 마찬가지로 뛰어넘긴 하지만, 그 신념을 자기 내면에만 간직하며,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고리는 뒷전이며, 다른 사람들이 그런 새로운 관점에 흥미를 가질 것이란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내향 직관을 통해 발견한 새로운 관점은 느닷없이 찾아온 것이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그 관점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설득할 만한 동기도 딱히 없다. 그런 신념, 또는 새로운 관점은 너무 특수하거나, 너무 모호하여 말로 표현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내향 직관을 활용하는 사람에게 신념이란 그저 각자에게 느닷없이 떠오르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될 것이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각자 다른 신념을 가지고 있다면, 그 차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은 없다. 나에겐 내 신념이 있고, 너에겐 네 신념이 있다. 끝. 새로운 아이디어나 증거 제시는 무의미하다. 어떤 사실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다면, 사소한 증거 따위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정의 [5] 상징과 실체간의 관계 매핑하기

내향 직관이란 상징과 실체간의 관계를 매핑하는 기능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저 원목 가구는 나로 하여금 집 주인이 상류층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기 위해 있는 것이다” 또는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북쪽은 지도의 위쪽에 표시함으로써 북반구에 위치한 나라들이 권력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나타내려고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위쪽에 표시한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한다. 내향 직관의 관점에서 상징을 인식하고 각 상징의 해석 방법을 알아내기 전까지는 실체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렇듯 상징과 실체간의 관계를 파악해 나가려고 하는 것이다.

다만 내향 직관을 활용할 때에는 체제 밖에서 상징과 해석 방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해석 외에도 상징과 의미를 매핑하는 다양한 방식이 공존하게 되며 고려 대상이 된다. 예를 들어 앞선 예시에서 원목 가구가 하류층을 상징할 수도 있지 않을까? 또는 시험에서 낙방하는 것을 슬픈 일이 아니라 축하할 일로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상징과 의미의 주어진 매핑을 바꾼다면, 우리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까?

내향 직관 기능은 어느 체제이든 지렛대로 작용하는 핵심 지점들을 파악해 나가기도 한다. 체제 내의 인과 관계는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가? 어떤 전제들이 깔려 있으며, 그 전제들이 틀렸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예를 들어, 개미들은 특정 페로몬을 “먹이를 주어야 하는 유충”으로 해석한다. 기생충 중에는 그 페로몬을 흉내낼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여 개미들이 자신에게 먹이를 가져다 주게끔 유도하는 것들이 있다. 이런 기생충들은 달리 말해 체제의 전제를 파악하여 그 전제를 활용하여 자기한테 유리한 방향으로 체제를 역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기생충들이 물론 내향 직관을 사용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류의 분석은 내향 직관의 접근법을 뚜렷이 보여준다. 즉, 시스템의 의도대로 그 시스템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시스템의 밖에서 실체가 상징으로 나타나고 그 상징과 해석 방법과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외향 직관이 “상자 밖으로 나가기”라면, 내향 직관은 “상자 자체를 이해하기”라고 할 수 있다. 내향 직관은 체제를 이루는 전제와 규칙을 파악하고 서술하는 기능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내향 직관은 분명 좌뇌 기능이다. 내향 직관을 사용하면서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라가거나 세상에 참여하는 일은 없다. 오히려 사람으로 하여금 행동을 멈추고, 자신의 머리 속으로 물러나 체제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행동하거나 체제의 의도가 가져올 수 있는 부정적인 결과에 대해 보다 냉철하게 생각하게 만든다.

내향 직관의 일반적인 정의들에 비해 이 정의는 내향 직관의 이른바 신비하거나 직관적인 면을 배제한다. 내향 직관이란 초월적인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며, 각각의 상징과 의미가 어떻게 매핑되어 있는지 의식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 비교적 단순한 정의는 특히 NJ와 SP 유형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을 설명하는데 유용하다: INJ들이 “외부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성향,” INTJ들의 “냉정하고 객관적인 스타일,” INFJ들이 흔히 말하는 “기존 권력관계를 뒷받침하기 위한 사회적인 우화,” SP들이 시스템을 이용하거나 조작하려는 성향, ENJ들에게서 나타나는 사회에서 한발 물러선 우월한 위치에 있으려는 성향, INJ들의 학술 자료에 나타나는 끊임없는 초월적인 관점에서의 토론이 그 예이다.

정의 [6] 변형/전환

내향 직관은 “변형/전환”의 과정을 뒷받침하는 기능이다. 이때의 변형은 논리적인, 윤리적인, 개인적인 것 등 여러 차원에서 일어나 수 있다. 많은 경우, 어떤 상황을 벗어나거나 피하는 것이 불가능할 때 내향 직관을 사용하는 사람은 자신의 특수한 다른 면을 부각시켜 당면한 문제를 최소화하거나 이해를 증진시키려 한다.

예) 공부를 끝까지 마치지 못하는 사람들의 경우 자신이 공부를 충분히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자신을 정당화하거나 놀거나 쉬면서 감각을 충족시키는 것에 더욱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있다.

그 사람이 자신의 게으름이 가져온 결과를 인식하고, 게으름의 원인을 파악하다 보면 게으름을 불러온 내재된 사고 방식을 발견하게 된다. 각 기능별로 이런 문제에 직면했을 때 사용하는 각각의 해결법이 있겠지만, 내향 직관은 특히 개인의 무의식과 사고 방식에 초점을 맞춘다. “어떻게 하면 앞으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을 피할 수 있을까?” “나의 어떤 면을 부각시켜 이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게으름이란 타고난 성향이라기 보다는 습관/행동 양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므로 개인이 “자신의 또 다른 버젼,” 항상 잠재되어 있었지만 그 동안 활용하지 않았던 면면을 부각시킴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이런 대응 방식에서 볼 수 있듯이 내향 직관은 관점의 이동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기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인이 스스로 깨달음을 통해 문제를 직시하고 자신의 태도를 바꾸는 문제 해결 방식은 내향 직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외부 데이터나 자원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충분치 않으며, 개인의 과거 행동 양식에서 벗어난 변형이 필요한 것이다.

예) 어떤 사람이 미래에 대한 총체적인 목표가 있을 경우, 그 목표의 달성 여부는 적절한 계획 수립 및 잠재 문제나 기회 등 다양한 요소에 대한 충분한 고려, 그리고 각 단계에서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방법이 존재하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내향 직관 기능은 사람들에게 이런 목표의 달성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 주며, 미래가 꼭 어떤 방식을 펼쳐질 것이라는 보장 보다는 그 계획/전략이 개인이 처한 현재 상황을 변형 시키는 것이라는 확신을 준다. 내향 직관은 하나의 큰 틀로 작용하며, 사람이 큰 계획에서 엉뚱한 길로 빠지는 것을 방지하며, 최종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세세한 사건들이 전부 적절한 때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