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INFJ들은 많이 다르다. 타 유형에 비해 숫자가 워낙 적은데다, 지극히 내성적이고 조용하기도 하고, 외향 감정을 활용하여 어느 상황에나 자신을 카멜레온처럼 보호색을 입혀 적당히 적응하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한 꺼풀만 들추고 나면, 통제하기도 어렵고 스스로 이해하기도 어려운 내향 직관이라는 거대한 폭풍을 한껏 껴안고, 새어나가지 않도록, 들키지 않도록 하루하루 절실한 마음으로 버텨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숨겨져 있다.
우리는 많이 다르다. 그래서인지, 자신이 INFJ라는 사실을 알고, 이 세상에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이제는 조금은 이해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상 살이 처음으로 나는 아직 괜찮다는 사실을 확인 받고, 나는 오히려 조금 특별하기도 하다는 사실에 설레기도 한다.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지고 내가 원하는 대로, 나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는 시도도 한다. 세상 사람들 붙들고 나는 INFJ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내 생활에서 나아지는 것은 없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왜 이렇게 느끼고 행동하는지 이제 나 자신에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나의 관계들은 극단적이거나 서툴다. 사회 생활은 여전히 녹록치 않고, 오히려 내가 왜 남들과 다른지에 대해 알고 나니, 세상과 타협하거나, 남들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려는 마음도 조금씩 작아진다. 나는 INFJ이지만, 나는 여전히 나일 뿐이다. INFJ들의 드높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괴리감이 있고, 이제는 남들이 노력하는 방식으로 노력하는 것도 나에게는 맞지 않다는 사실을 안 이상, 오히려 삶의 방향을 잃기가 쉬운 시기다.
어느 유형이든 자신만의 필살기가 있다. 그리고 어느 유형이든 자신만의 숙제가 있다. INFJ의 필살기는 내향 직관이라는 거대한 암흑의 바다에 외향 감정이라는 자그마한 방향타를 설치한 것이다. 내향 직관은 애초에 무의식적인 기능이다. 그래서 스스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적절히 통제하고, 활용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런 거대한 바다를 초딩에게, 사회 초년생에게 안겨 줘봤자, 그 무게를 견뎌내고, 자신의 힘으로 그것을 조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린 시절에는 그저 바다 안에 푹 잠겨, 자신의 머리 속에서, 책 속에서, 상상 속에서 유영하며 보낸다. 하지만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각자 유형마다 자신의 필살기를 꺼내 드는데, INFJ는 자신의 필살기를 꺼내다가 오히려 그 필살기에게 삼킴을 당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일단 꾹꾹 눌러놓고 본다.
INFJ는 많이 다르다. 그래서 자신 안의 혼돈과 같은 바다를 꺼내 들었을 때, 그 무게를 견뎌낼 만한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세상 사람 모두 각자 바다를 하나씩 이고 간다면, 이 과정이 그토록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다. 우리는 우리에게만 보이는 이상적인 세상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존재하는데, 그것이 왜 남들 눈에는 안 보이는지 어렸을 때는 그저 의아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세상을 이루려면 내가 한없이 강해져서 손수 지어내야 한다는 것을.
어떤 훈련을 하는지는 각자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 INFJ는 몸과 마음과 관계가 우선 탄탄해져야 이상을 실현할 만한 밑바탕이 마련되는 것 같다. 우선 몸이 건강해야 한다. 특히 사회 생활을 하는 INFJ들은 외향형이나 감각형 유형에 비해 에너지 소비가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스스로 무너지지 않으려면 평소에 끼니를 거르지 않는 건강한 식습관을 기르고,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꾸준히 해야만 한다. 우리는 어려워하는 것은 쉽게 해내지만, 남들이 쉽게 하는 것이 때로는 너무도 힘겨울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건강해져야만 한다.
우리는 또한 마음을 건강하게 가꿔야 한다. 주어진 체제대로 적응해서 살아가는 감각형들에 비해, 혹은 논리라는 일정한 잣대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고형들에 비해, 무의식과 감정으로 주로 세상을 인식하는 INFJ들은 옳고 그름이 헷갈리고 가치 판단에서 매번 흔들린다. 이럴 때 타인으로부터 오해를 사기도 하고 비난을 받기도 한다. INFJ가 경험하는 세상은 흑과 백이 없고, 두 사람 간에 갈등이 있으면 이 사람의 입장도 이해가 가고, 한편으로 저 사람의 입장도 수긍이 가는, 정말이지 타인에게 설명하다가 오히려 돌 맞을 만한 관점이라 입 다물고 있는 것이 상책인 경우가 많다. 게다가 타인의 감정까지 흡수하여 떠안고 살아가는 설정은, 정말이지 견디기 쉽지 않은 생활이다. 그래서 그만큼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자아 존중감이 너덜너덜해지기 딱 좋은 유형인데, 너덜너덜해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자신을 강화해야 한다. 자신을 치열하게 사랑하고 인정하는 연습을 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관계를 건강하게 구축해야만 한다. INFJ가 아무리 내성적이라고는 하지만, 외향 감정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유형이라 사람들과 동떨어져서는 살 수 없다. 자신의 거대한 이상을 실현하더라도, INTJ처럼 시스템이나 과학으로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사람을 통해 실현해야 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 나에게 그토록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이 사실은 나의 든든한 친구이자, 가족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리고 이들과 건강하고 즐겁게 소통하고, 관계를 이어나가는 자신만의 방식을 터득해야만 한다.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그런 노력을 통해 좋은 관계를 구축해 나가야만 한다.
그리고 몸과 마음과 관계를 통해 외향 감정을 튼튼히 가꾸어 나가면서, 동시에 INFJ는 놀아야 한다. INFJ에게 놀이는 타 유형과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갖는다. 사람들은 대체로 놀이를 통해 즐거움과 설렘을 추구하고, 그 과정에서 일상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하지만 INFJ에게 놀이는 평소에 묶어 두었던 내향 직관이라는 거대한 바다의 결박을 잠시 풀어주는 행위다. 마음껏 흐르고 요동치고 반짝이도록 내버려두고, 어디로 흘러가는지, 어떻게 파도 치는지 지켜보며 학습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INFJ에게 놀이란 목적이 없는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오히려 타 유형에게는 일처럼 느껴지는 것들이 INFJ에게는 놀이로 분류되기도 한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진정한 놀이와 외향 감각 기능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우리의 아킬레스건, 외향 감각의 유혹에 빠져 술이나 쇼핑, 다른 중독성 행위에 빠지는 것은 무의미하게 시간을 허비하고, 위에서 노력하여 구축한 모든 것을 도로 무너뜨리는 것을 의미한다. 오히려, INFJ는 절제된 생활을 해나갈 때에 더 많은 기쁨을 얻는 유형인 것으로 추정된다. 물질적인 즐거움에 빠지면 빠질수록 열등 기능인 외향 감각에 더욱 많은 에너지를 빼앗기므로, 가능한 절제된 생활을 하도록 자신을 훈련하는 것이 좋다.
우리 INFJ들에게 주어진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그리고 동행이 많은 길도 아닌지라, 외로움까지 더해져 더욱 힘겹게 느껴질 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겸허한 자세로, 매일매일 자신을 갈고 닦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가치로움을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노력의 결실이 노인이 되어서 나타나거나, 평생 나타나지 않더라도 말이다. 각자 자리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고유의 과제를 매일매일 수행해 나가는 것 자체가 행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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