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J

[INFJ] 직관형과 감각형이 세상을 인식하는 법

멜리비 2019. 6. 5. 08:02

MBTI는 유용한 검사다.

나는 이 검사에 의한 성격 분류에 관심이 아주 많은 편이다.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내가 INTJ (과학자) 형이며, 이 형은 인구의 1%에만 해당하는 희귀한 유형이라는 사실을 알아내면서부터였다. INTJ 유형에 대해 알아 보다 보니, 내가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식과 그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 남들과 현격히 달라, 남들에게 당연한 것이 나에게 하나도 당연하지 않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뒤늦게나마 남들과 달라도 괜찮다는 것, 내가 이기적이거나, 무심하거나, 멍청한 게 아니라, 단지 조금 다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점점 내 진정한 모습을 찾아가게 되었다.

몇년 간 이 문제에 대해 알아보다 보니, 나는 사실 INFJ 형이라고 스스로 판명했지만, 뭐 암튼 나에 대해 더 알게 해주는 좋은 도구인 것 같다.

MBTI 검사는 사람들이 주변 환경, 즉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인식, N 또는 S), 그리고 받아들인 각종 정보를 어떤 방식으로 처리하는지 (판단, F 또는 T)를 판명하는 검사다. 사람들 중에는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가 있듯이, 사람들마다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할 때 선호하는 기능들이 있는 것이다. 물론 오른손잡이가 열심히 연습하면 왼손으로 글씨도 쓰고 젓가락질도 하겠지만, 오른손을 쓸 때 에너지 소모가 상대적으로 적듯이, 사람마다 자신의 우세한 기능을 활용하면 좀더 효율적으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식에는 크게 N형 (Intuition, 직관)과, S형 (Sensing, 감각)이 있다.

눈앞에 원숭이랑 기린이랑 앵무새가 있다고 치자.

S형 인간들은 그걸 보면서 원숭이랑 기린이랑 앵무새가 있다고 있는 그대로, 구체적으로 받아들인다. S 기능이 특히 발달한 사람들은 세세한 디테일까지, 원숭이는 오렌지색이었고, 앵무새가 기린 머리 위에 앉아 있었고, 세 마리 모두 목요일 오전 10시에 방영하는 동물의 왕국에 나타난 사실까지 기억한다.

N형 인간들은 똑같은걸 보면서, 동물이 세 마리 있다고 인식한다. 정보를 구체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추상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세세한 디테일에는 크게 관심 없다. 하지만 다른 정보와 조합하는 능력이 있다. 눈앞의 동물 세 마리와 2년전에 봤던 다큐멘터리와 지난주 친구가 이야기하던 여행 패키지 얘기를 무의식적으로 연결하면서 아프리카 여행이 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S형 인간의 사고는 정보를 받아들일 때 직선적이고 구체적이고 세세한 반면, N형 인간들은 복합적이고 추상적이고 종합적이다.

내 자신은 N형이 많이 우세한 입장에서 양쪽을 관찰해본 결과, S형 인간들은 주로 순차적으로 사고를 하며, 일관성 있고, 옷을 잘 입는다 (눈썰미가 있다). 반면 N형 인간들은 어떤 문제가 생기면 결론을 너무 빨리 내거나 너무 오래 끌며, 일관성은 없지만 큰 그림을 보는 능력이 있고, 옷을 잘 못 입는다. 나는 업무 하면서 순차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S형 친구가 한때 부러웠었다. A니까 B고, B니까 C고, C니까 결론은 D다, 이런 식으로 차분하게 풀어 나가는 모습이 정말 프로 같아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식으로 사고하려고 하면 마치 난독증 환자가 책을 보면 글씨가 산산이 흩어지듯 생각이 분무기로 물 뿌릴 때처럼 공기중으로 흩어져 버린다. A니까 B다..까지 가는데도 B와 얼핏 보면 관련 없는 수많은 생각들이 줄줄이 딸려 나와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그래서 차라리 혼자 조용히 앉아 머릿속에 흙탕물처럼 소용돌이 치고 있는 온갖 생각들 중에 쓸만한 놈들을 순서에 상관없이 건져낸다. B도 있고 C도 있고 A도 있고...결론은 Y다!! 이러고 있으면 S형 인간들은 굉장히 싫어한다. 그래서 처음 입사했을 때는 일 잘한다는 소리를 못들었지만, 년차가 쌓이다 보니 저 친구 뭔가 감이 있다는 소리를 종종 듣게 되었고 나도 나름 내 생각을 정리해서 전달하는 법을 익혀 지금은 내 말에 토 다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

하지만 저 생각을 건져내는 과정도 어렸을 때는 마음대로 조절하지 못했다. 주변에서는 차분하게 앉아서 따져보면 답이 나올거라고 하는데 왜 나만 안되는지 몰랐다. 억지로 하랄 때는 안되다가 어느날 아무 관련 없는 티비 드라마를 보다가 갑자기 국어 시간에 읽었던 문구가 이해가 되고, 아침에 잠에서 깼는데 일주일 전에 고민하던 생물 문제에 대한 답이 나 있고, 암튼 그런 기분이다. 그래서 일도 열심히 한다고 되는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부터는, 평소에는 빈둥빈둥 놀다가 기분이 날때 한꺼번에 후닥닥 해버리는 스타일로 발전했다.

옷 잘 입는 건 보니까 S형 인간들이 감각이 예민하고 공간지각력이 좋아서인 것 같다. N형 인간들은 개념부터 잡고 거기서 출발하지만, 머리속 이미지가 현실로 잘 전환이 안 되는 것 같다...

어느 MBTI 카페에서 본 글 중에 한국은 "S"들의 나라..라는 문구가 있었다. 이 글에 대해서도 역시 세세한 건 하나도 기억 안 나는 나 ㅡㅡ; 하지만 내가 확신이 서는 일에 대해 자신있게 얘기하는데 왜?라고 차근차근 따지고 들어오는 S형 사람들이 어렸을 때 주변에 많았던지 그 오해 받는 듯한 기분, 심할 땐 놀림 당하는 듯한 기분 (..설마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겠지? 내가 싫으니까 괜히 저렇게 딴지를 거는거겠지? 하던 기분)이 너무나도 싫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들..이런 기분을 제공하는 나의 N 기능을 위해 충분한 먹잇감을 제공하는 것이 요새 나의 화두다. 가능한 제한을 두지 않고 시간을 충분히 가지면서 마음이 가는 대로 많이 보고 많이 읽고 많이 경험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