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J

[INFJ] 세상에 나를 끼워맞추려 하지 말자

멜리비 2024. 1. 16. 14:30

저는 회사원에서 심리 상담사로 직업을 바꾸면서 기대한 생활이 있었습니다. 조직 생활에서 요구되는 다양한 적응을 전부 뒤로 하고, 평온하고도 조용한 나만의 리듬,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나만의 생활을 구축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가족, 친근한 몇몇의 오랜 벗만 두고, 조용히 내 할일에 전념하는 그런, 조금은 은둔자 같은 생활 말입니다. 하지만 막상 새로운 커리어에 발을 내딛어 보니,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아왔습니다. 전문직으로 자리를 잡으려면, 회사 다닐 때보다 훨씬 더 열정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면서 나를 알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조직에 들어간 INFJ는 이미 만들어진 세상에 자신을 끼워 넣어야 하는 문제에 가장 먼저 직면합니다. 인구의 1-3% 밖에 되지 않는 INFJ는 자신과 다르게 세상을 인식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지내는 것을 넘어서, 그들이 구축해 놓은 틀에 혼신을 다해 적응하려 합니다. 부기능을 외향 감정으로 두고 있어 주변과의 어우러짐에 본능적으로 집중하는 INFJ에게는, 낯설고 어색한 규칙에 적응하는 것이 불편하면서도 절실한, 모순된 상황에 빠져 버리죠. 의미 없는 스몰 토크, 문제의 핵심을 짚지 않는 끝없는 업무 회의, 진정한 연결감은 느낄 수 없는 각종 모임들. 
아무리 노력해도 적당한 정도까지만 적응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닫습니다. 하지만 멘탈이 강한건지 대안이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는데, 외향 감정을 만족시킬 만큼 나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을 떨칠 수 없더라구요. 심리 상담사가 되면, 적어도 남들과 이렇게까지 부대끼지 않아도 될거라는 기대감에 설레이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졸업을 하고 본격적으로 라이센스를 내걸고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심리 상담은 절대로 고립된 상태로 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심리 상담은 사람 공부이자 인생 공부입니다. 그런 공부는 책만 보고 이론만 파서는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저마다 자기만의 색채, 자기만의 철학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학원 특성상 기본 커리큘럼은 따라가야 하지만 학교 다닐 때부터 자기만의 분야를 파기 시작하는 동기가 많았습니다. 저 또한 저만의 이론을 학교 다닐때부터 고민하기 시작했구요. 이런 동료들의 지혜와 노하우에 접속하지 못한 상담사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도태되는 것 같습니다. 외부와의 피드백이 따끔하기는 해도 상담 일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맞습니다. 그리고 그런 활력은 연차가 쌓일 수록 더욱 중요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평생 해보지 않은 네트워킹을 의도적으로요. 그런데 의외로 사람 만나는 일이 즐겁습니다. 예전에는 내가 특이하고 부족하다는 생각에 빨리 지치던 일들이, 이제는 나만의 기준으로, 나만의 방식과 리듬으로 진행하다 보니 어느새 그룹의 방향을 결정하는 역할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순순히 따라주는 것도, 가끔은 내가 사기꾼 같다 싶으면서도, 주어진 상황 속에서 좋은 의도로 최선을 다했다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불안감을 다스립니다. 
이게 INFJ의 본연의 모습이 아닐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그 관계가 번성하고 유지될 수 있는 빈도수, 주파수, 소통 방식 모두 INFJ가 자기도 모르는 새 누구보다도 정교하게 구축해놓는 것. 남들의 주파수에 억지로 나를 끼워맞추려다 끌려다니기만 하는 기분이 아닌, 마치 장기판을 앞에 두고 적당한 시점에 적당한 수를 두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나만의 리듬으로 진행하다 보니 에너지는 쉽게 고갈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편안해하고 저는 보람을 느낍니다. 
깊이 있는 철학적인 대화는 내향 감정형 동료들에게, 내담자에게 내줄 수 있는 기가 막힌 기술들은 외향 감각형 동료들에게, 가장 핫한 최신 강의들은 외향 감정형 동료들에게서 정보를 얻고, 저는 가벼운 마음으로 사람과 사람, 아이디어와 아이디어를 이어줄 수 있는 판을 짜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저의 정체성은 그 연결고리를 제공하는 것에서 앞으로 상당 부분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