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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J] INFJ가 당신을 싫어하는 이유

멜리비 2024. 2. 15. 15:35

10여년 만에 만난 학교 동창이 저에게, "난 네가 나를 싫어하는 줄 알았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친구에 대해 좋게만 생각해 왔기 때문에 깜짝 놀라기만 했고, 준비된 답변도 없었습니다. 격하게 반문하는 대신 어물쩍 넘어갔으니까, 그 친구는 여전히 제가 자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추정해봅니다. 오해로 점철된 INFJ의 어색한 관계들에 다시 한번 허탈해집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INFJ가 선의의 옹호자라느니 예수나 간디와 같은 유형이라느니 하면서 INFJ가 한없이 남을 포용하고 고민만 들어주는 존재라는 이미지가 있는 같아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만화 스누피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찰리 브라운이 독백으로, "나는 인류를 사랑하지만, 사람들 개개인은 종종 나를 미치게 해" 라고요. 제가 보기에 이게 INFJ의 사람에 대한 마음을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구절입니다.  
INFJ에게는 기본적으로 타인의 아픔에 대한 깊은 연민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연민이 내향 감정 유형에 비해 형이상학적인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외향 감정이라 따뜻하고 동정심도 많은 듯 보이지만, 결국 내면을 지배하는 것은 내향 직관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스스로 생각했을 때, INFJ의 연민은 날것 그대로의 감정에 대한 것이 아닌, 한발 떨어져 바라보면서 느끼는, 조금은 객관적인 (?) 느낌의 연민인 것 같습니다.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분명 INFJ만의 높은 기준이 적용되며, 그에 미달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또 엄청 박하게 평가를 하는 면이 있습니다. 물론 속으로만요. 사람들이 평소 드러내는 사회적인 가면 이면의 감정과 의도에 온통 집중하는 INFJ에게는, 겉으로 보기에 "좋은 사람"인지를 넘어서, 그 사람의 의도를 들여다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타인을 배려하는 말도 잘 하고, 공감도 잘해주고, 밥도 맛있게 잘 사주는 사람이라도, 그 의도가 순수치 못하다는 느낌이 요만큼이라도 들면, INFJ의 마음은 돌아서 버립니다. 외향 감정의 끝판왕으로 스스로 인지하는 INFJ는 오히려 같은 류의 사람들이 쓰는 '기술'에는 하나도 감명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INFJ에게 억지로 잘해주려는 노력은 전부 헛수고입니다. 되려 반감만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저에게 믿음을 주는 유형은 대체로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과 속내가 일치한다는 것이 긴 시간 동안 검증된 사람들입니다. 말을 무뚝뚝하게, 심지어는 상처 주는 말을 하는 T유형이라도, 그 의도가 순수하다고 판단되면, 즉 이기적이거나 가식적이거나 남을 이용하려는 의도가 없는 사람으로 보이면, 그들의 매몰찬 말들을 견뎌가며 그 친구를 좋아합니다. 또, 자기 주관적인 세계에 주로 몰입하며 외향 감정 기능이 아예 결여된, 따뜻하면서도 고집이 세고 융통성이 없는 내향 감정형이라도, 또한 가식이 없고 의도가 좋기 때문에 저는 그런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가끔은 눈이 휘둥그레해질 정도로 현실과의 끈을 놓는 모습에 놀라기는 해도, 그래도 좋습니다. 또 외향 감정을 순수하게 활용하는 친구들, ENFP나 ESFP들하고도 잘 지내는 편입니다. 이 친구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그 자체로 그들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잔머리 굴리지 않고, 이기적이지 않은 순수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인 사람에 매료되는 편이고, 너무 의도된 노력이나 가식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의심을 심하게 하는 편입니다. 문제는 이런 평가 기준을 전혀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때로는 너무 해맑게 이 사람 저 사람과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선을 긋는 것을 보고 주변 사람들이 놀라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처음에는 에이~ 뭘 그렇게까지 말하냐고 대강 넘기려는 모습에 INFJ는 더욱 심각하게 선을 긋습니다. 그리고 그런 주관적인 판단을, 특히 나이가 어렸을 때에는 더욱더, 굳건히 믿는 편이고, 한번 내린 평가는 잘 바꾸지 않습니다. 이 부분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개선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그래도 저는 아직도 저의 사람에 대한 직감을 90%는 믿습니다. 
포스팅의 제목을 자극적으로 뽑았으니, 그만큼 정확한 답을 내려야 할 것 같네요. INFJ가 당신을 싫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그건 아마도 둘 사이에 INFJ의 기준을 충족할 만큼 신뢰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INFJ의 기준은 지극히 주관적인 그들만의 도덕성에 관한 기준입니다. 의도가 좋은지, 사람이 순수한지, 겉모습과 속내가 일치하는지 등등에 관한. 외모나 재력, 능력 같은 것에는 아예 관심이 없습니다. INFJ와 잘 지내고 싶다면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의도된 노력보다는, 그저 최선을 다해서 있는 그대로의 나처럼 산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INFJ는 당신을 관찰해 가며 요리조리 점검해 보며 서서히 마음을 열지도 모릅니다. 여기에 INFJ에게는 결여된 내향 감정이나 외향 감각적인 특징, 혹은 외향 사고와 같은 신기한 미지의 기능들을 가지고 있다면 플러스이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