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하다 보면 외부 환경으로 인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분들도 분명 계시지만, 더 흔하게는 외부 환경과는 상관 없이 자기 안의 갈등을 아직 풀어내지 못해, 스스로 자기 앞길을 매우 효과적으로 막고 계신 분들도 만납니다. 충분히 매력적인데 스스로 사랑 받을 자격이 없다고 굳게 믿고 계신 분, 충분히 유능한데 스스로 무능하다고 굳게 믿고 계신 분, 충분히 강인한데 스스로 유약하다고 굳게 믿게 계신 분. 이분들을 보면 제가 너무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많은 경우, 충분히 단단해지지 못한 자아를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 기제로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끼고 사는 경우로 추정됩니다. 반면 입에 담지 못할 트라우마를 겪고도 씩씩하게 파트너와 건강한 관계를 쌓고 스스로 꿈꾼 일들을 하나하나 해내는 분도 계신데, 아픈 일을 당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상담사가 아닌 한 인간으로써 보고 배우며 숙연해지는 일도 종종 있구요.
저도 한때는 그렇게 내면의 블럭을 스스로 걸어놓고 지냈던 시간이 분명 있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사지 멀쩡하고 나름 유복하게 자라난 저였지만, 정신적으로 자신을 부정적인 생각 속에 가두어 놓고 있어서 앞으로 한발짝씩 나가는게 너무 힘겹게 느껴지던 세월이 참 길었습니다. 그 수렁 같은 시간 속에서 제가 스스로 했던 생각을 한번 되돌아보았습니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거야." 나의 복잡한 내면을 경험 부족으로 인해 내가 스스로 이해를 못하고 정리를 못한 것이었지, 그 시간에 남들의 이해력을 탓하고 깎아내려서 좋아진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호의나 지혜를 우습게 보며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나 자신을 정신적으로 고립시켰고, 그로 인해 내향 직관은 외향 감정이나 외향 감각의 건강한 인풋 없이 혼자 헛바퀴 돌며 시간을 보냈던 것 같네요. 생각해보면 타인으로부터 온전히 이해 받고 싶은 마음은 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의 블럭으로 인해 생겨난 갈증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내가 인정하지 못한 나 자신을 누군가 꿰뚫어보고 알아봐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내가 나를 인정하고 알아줘야 타인의 호의도 받아들이고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배워 나갑니다. 물론, 그 당시 나 자신을 남에게 드러낼 수 있을 만큼 자아가 단단하지 못했던 스스로에 대한 연민도 있습니다. 아직은 여린 나 자신을 지켜내면서 안에서만 답을 찾으려 애썼던 어린 내가 이제는 보입니다.
"해결책은 복잡하고 깊이가 있을 거야, 나는 복잡한 사람이니까." 아니었습니다. 살아보니 어느 상황이든 효과적인 해결책은 언제나 가장 쉽고 단순했습니다. 되돌아 보면, 저는 여린 자아를 지켜내기 위해 "나는 내면이 복잡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붙들어매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내면이 복잡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이치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그로 인해 세상살이가 감당이 안 되는 것 같은 기분에 억눌렸고, 그로 인해 나의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더욱 내적으로만 파고들었던 겁니다. 아직 정제되지 않은 내향 직관이 독주하는 인프제는 살아 숨쉬는, 그리고 익숙하고 통제 범위 안에 있는 내면의 세계에만 몰입한 나머지 세상과의 접점을 점점 잃어가고, 그로 인해 실질적으로 사회 생활을 하고 인간 관계를 이어 가고 커리어를 쌓아나가는데 자꾸만 서툴어지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 같습니다. 결국 저에게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자존심을 잠깐 내려놓고, 가장 쉬운, 나만 빼고 다 아는 것 같은 그런 분야에 대한 초보적인 질문들이었습니다.
"나는 INFJ라 ○○을 잘 못하는거야." INFJ에게는 마치 오른손잡이가 오른손을 선호하듯이, 우선적으로 손이 가는 기능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른손잡이라고 왼손을 전혀 못쓰는 것이 아니듯이, INFJ의 탑4에 드는 기능이 아니더라도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조금 더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하긴 하지만요. 예전에 저에게도, 정제되지 않은 내향 직관이 미리 차단한 가능성들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우스운(?) 생각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살다 보면 나의 성향과 맞지 않는 일들을 반드시 해내야 하는 순간들이 오는데, 빠져나갈 구멍이 없을 때에는 저도 모르게 다른 기능들을 끌어와 쓰고 있더라구요. 내향성 검사에서 한때 99%가 나오던 저도, 아무도 모르는 캐나다 땅에서는 친구를 사귀기 위해 보는 사람마다 끌어안고 자기 소개하고 휘젓고 다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나, 학위를 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주식에 한창 몰입했을 때나, "어? 내가 이런 사람이었다니" 싶은 순간들이 하나 둘씩 모이다 보니, 무엇이든 방법을 알고 꾸준히 연습을 하면 되는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 내가 모르는 나의 어떤 모습들이 숨겨져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세상과 소통의 연결고리를 놓아서는 안되는데, 때로는 그 무게를 견디기 힘들다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이제는 내가 원하는 환경을 스스로 구축하여 충분한 시간과 공간을 확보해 놓았지만, 어린 시절의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저는 그 시절의 제 자신에게 이미 충분히 힘드니까, 너무 자기 자신을 질책하고 박하게 대하지는 말라고 조언을 했을 것 같습니다. 때로는 내면으로 파고들고, 나에 대한 연민을 느껴도 좋지만, 그래도 한동안 쉬고 일어나면 다시 한번 밖으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 보라고도 할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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