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J와 결혼에 관한 포스팅을 하려고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누구나 알만한 그런 온전하고 알찬 내용들만 줄줄이 써내려가는 제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INFJ로써 이렇게 안정적인 관계에 머물게 된 것은 불과 서너해에 불과하고, 그 이전까지는 지렁이처럼 꾸불꾸불하고 꼬인 길을 돌아왔던 기억이 되살아나더군요. 개인적으로 불안정 애착의 영향도 조금 있었던 것 같지만, 기본적으로 INFJ 특유의 외향 감정과 내향 직관의 조합으로 인해 연애에 있어서는 정말 스펙터클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내려온 것만은 사실입니다. 사주 보는 것도 좋아하는데, 사주 보러 가면 항상 듣는 말이,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봐야 직성이 풀린다고요. 그래서 지금에서야, 제가 연애 과정을 통해 느꼈던 것들을 제 자신을 위해서라도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여기 방문하시는 분들 중 INFJ라면 옆에서 아무리 뜯어말려도 결국 자신만의 길로 갈거라는 걸 아니깐요.
저는 우선, 연결감에 항상 목말라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목이 조금 마른 정도가 아니라 허기가 질 정도로 타인과의 연결감을 갈망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선택한 전공과 직업이 INFJ가 쉽게 연결감을 느낄 수 없는 분야들이라 더욱 그랬을 수도 있었겠지만, 기본적으로 항상 주변 사람들과의 이질감이 느껴졌고, 단 한번만이라도, 누군가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었으면, 그런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내 인생은 살만해질 거라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살면서 마주치는 사람들 모두, 저와는 다른 렌즈로 세상을 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항상 들었습니다. 정말 멀쩡한 상대가 나타나도, 그런 감정적인 이질감 때문에 관계를 이어가려는 노력도 거의 안 하고, 오히려 그러 상대들을 적극적으로 밀어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연결감에 대한 허기를 채우기 위해, 저는 아주 오랜 시간동안 저의 이상을 투영할 만한 상대를 흠모하며 시간을 많이 보냈습니다. 상대방이 현실적으로 어떤 사람이냐와는 상관 없이, 그저 스쳐가는 사람들 중에서도, 저 사람이라면 이럴 것이다, 라는 나만의 간절한 마음이 만들어낸 허상을 좋아하고 있었던 거죠. 상대방과 자주 마주할 일이 없으면, 그런 마음이 더욱 강하게 오래 지속되기도 했습니다. 허상이 깨어질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드니깐요. 그리고 흔히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다가가서 대화도 나누고 더 잘 알고 싶어하는 것이 정상인데, 저는 거리를 두고, 관계의 평행선을 유지하는 데 무의식적으로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패턴을 언젠가는 깨닫고서부터는, 조금 더 현실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친구처럼 마음이 맞는 존재를 찾아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저와는 생각이나 감정의 결이 아주 비슷하고, 또한 저에 대해 무조건 우호적인 상대에 대한 애착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이전보다는 그래도 좀 낫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관계 속에서는 서로 못난 부분을 위로하는, 나쁘게 보면 서로 성장을 멈추게 하는 그런 관계 속에 머물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서로 힘들고 아프니까, 위로하고 보호막이 되어주는 관계. 그리고 되돌아보니, 제가 많은 것을 주어야만 하는 관계들이기도 했습니다. 스스로 자존감이 낮고 자신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유용한 존재가 되려고 한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무언가를 상대방에게 주어야만 나의 가치가 비로소 정당화되는 거죠. 이런 관계는 저에게 안식처가 되기도 했지만, 어떠한 온전한 결실로 나아가지는 못했습니다. 저도, 상대방도 모두 아직 마음의 허기가 있으니까, 온전한 관계를 만들어나갈 능력이 없었던 거죠.
안식처 같은 이런 관계 속에서 저는 몇 가지 깨닫기는 했습니다. 우선 INFJ는 특유의 외향 감정/내향 직관/외향 감각 조합으로 인해, 관계를 만들어가고 이끌어 가는 능력은 평균 이상이라는 것. 그런 면에서 INFJ는 분명 강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상대방을 긍정적으로 봐주고, 상대방의 입장에 자신을 대입하는 능력은 온전한 관계에서는 정말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처음으로 타인과의 깊이 있는 접점을 찾은 것도 정말 중요했습니다. 서로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제한적으로나마 이해 받을 수 있고 위로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런 접점을 찾고 나니, 특히 머리 속으로만 돌고 돌던 비생산적인 생각들이 많이 멈추기도 했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는 해도 연결감이 전혀 없었던 상태에서는 내향 사고가 생산해 내는 생각들이 독처럼 마음 속에 고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드는군요. 외향 감정으로 독이 빠져 나갈 출구를 마련해준 셈인거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관계들이 나를 결코 채워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때가 감정적으로는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던 것 같네요. 이런 깨달음은 정말 많은 아픔을 몰고 왔고, 저는 언제나 이후에 제 반쪽을 만나기 위해 이 시기동안 정말 피눈물 나는 댓가를 치렀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이 시기를 거쳐 내가 스스로 나를 채워주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데에 드디어 생각이 미쳤고, 관련 책이든 블로그든 전부 다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신체 건강부터 시작하여 나의 몸을 잘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적인 시선에 맞추어 살을 어디까지 꼭 빼야 한다든가 그런 폭압적인 마인드에서 벗어나, 정말 나를 꾹꾹 채워줄만한 영양가 있는 음식, 그리고 운동이 첫 시작이었습니다. 그런 후에는 스스로를 기쁘게 하는 일, 그리고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가려는 노력, 나에게 항상 받기만 하는 사람과 거리를 두는, 상식적이지만 너무나도 어려운 과제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 동안 저는 누군가를 만나려는 노력보다는 나 자신을 기쁘게 해주고 아껴주기 위한 치열한(?) 노력을 했던 것 같습니다.
쭉 써놓고 보니, 외향 감정에 근육이 붙기 시작하면서부터 제 자신과의 관계도 호전되고 타인과의 관계도 호전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외향 감정을 통해 현실과의 접점을 찾았던 것 같고, 그 접점을 통해 마음 속 독을 중화할 수 있었던 것도 같구요. 물론 한두번쯤 감정적으로는 바닥을 치기는 했지만요. 성장통은 있었지만, 이 모든 과정을 어찌어찌 헤쳐나갈 수 있었던 것은 내향 직관이라는 서툴지만 마음 한 구석에 모기 목소리로 진실을 알려주는 기능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건 아니다, 이런 관계를 지속해서는 안된다, 라는 목소리를 믿기 시작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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