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 애착 유형 이해하기; 이들이 친밀한 관계를 갈망하면서도 피하는 이유
당신이 지금 외롭고, 속으로 사랑과 관심을 갈구하고 있는 상황을 상상해보세요. 그러다가 이상형을 만났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기쁘고 설레일까요. 이제서야 당신은 항상 바래왔던 것처럼 행복해지고, 스스로 온전하다고 느낄 수 있게 된 겁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난 후, 당신의 연인이 드디어 당신에게 사랑한다고 고백을 하는데, 이상하게도 불안한 감정과 불길한 느낌이 마구 밀려옵니다. 당신은 상대방에게 마치 기쁜 것처럼 보이려고 애씁니다. 그게 “정상적인” 사람이 보여야 하는 반응이니깐요. 하지만 자신의 불안함을 숨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자신의 불안하고 미적지근한 반응에 대해 애써 연인에게 설명하려 하지만, 갈수록 뭔가 자신이 이상한 사람 같고 오히려 매달리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듭니다. 몇 주의 시간이 흐르지만, 당신은 점점 불안해지기만 하며, 연인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서 그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그리고 당신이 평생 피하고 억누르려 애썼던 그 기분...뱃속 깊이 느껴지는 기분 나쁜 “그 기분”이 자꾸만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다시 한번 당신의 관계가 망가지면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야!”라고 스스로 소리치고 싶어집니다.
위에서 묘사한 과정을 설명하자면, 당신은 자신의 방어벽 뒤로 달려가 숨은 것입니다. 당신의 방어벽이란, 당신을 평생 보호해주고 안전하게 지켜 주었던 성격의 일부분입니다. 물론, 이 방어벽은 합리적인 사고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감정 영역에 뿌리 깊이 박혀 있어, 주변 환경에서 특정 조건이 형성되면 자동으로 작동합니다. 당신의 방어벽은 합리적인 사고나 사랑과 배려를 갈구하는 당신의 욕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당신이 상처 받고 외로운 상태에 머물도록 작동합니다.
우리는 애착 이론을 통해 이 과정에 대해 더욱 심도 있게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로부터 떨어질 때마다 애착 시스템은 불안감을 증대 시킴으로써 어린 아이가 부모로부터 떨어져 지내는 것을 방지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 아이가 안정을 되찾기 위해 다가간 부모 자신이 불안정하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부모가 다가오는 어린 아이에게 소리 치거나, 혹은 신체적으로 해치기라도 한다면, 이 “애착 대상”은 아이로 하여금 애초에 불안함을 느끼게 한 상황보다 더욱 큰 두려움을 안겨줄 수도 있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부모는 (자신 또한 학대의 피해자일 수 있어요) 불안함을 느끼는 아이를 적절히 안심시키지 못합니다. 어떤 경우라도, 아이에게 내재된 애착 시스템은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합니다. 아이는 환경으로부터 느껴지는 불안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부모에게서 필요한 안정감 또한 얻지 못합니다. 더욱 안 좋은 것은, 부모가 아이의 불안감을 증폭 시키다 보면, 아이는 어쩔 수 없이 안정을 찾기 위해 두려운 부모에게 또다시 다가갈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위협에 대해 매우 민감해져, 환경에서 조금이라도 위험 신호가 될만한 상황에 대해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면서도 (불안정-집착 애착 유형) 한편으로 대인 관계에서의 친밀함을 피하려 합니다 (무시-회피 애착 유형). 연구를 진행하다 보면 (예를 들어 Mary Ainsworth’s “Strange Situation” 패러다임), 아이들은 낯선 상황에 봉착했을 때 부모에게 다가가다가, 갑자기 얼어붙었다가, 목적 없이 주변을 배회하기 시작합니다. 마찬가지로 어른이 되었을 때에, 이들은 친밀함을 갈구하여 친구나 연인이 될만한 사람에게 다가갔다가도, 어느 정도 이상 가까워지고 나면 돌연 거리를 두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과 관계를 맺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다가와 달라는 메시지와 저리 가라는 메시지를 동시에 받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물론, 이렇듯 공포-회피 애착 유형의 사람은 이런 과정을 의식하지 못하며, 오히려 다양한 관계 속에서 자신이 피해자가 된 느낌을 강하게 가질 것입니다. 이 사람이 자신이 스스로 관계에서 거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일 이런 묘사를 읽고 있는 당신이 유사한 패턴을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된다면, 힘내세요. 이런 방어 행동은 어린 시절의 어려운 환경에 대처하기 위한 매우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이때의 어려운 환경이란, 신체적인 학대, 혹은 분노나 공격성, 혹은 두려움을 유발하는 부모의 행동 등을 말합니다. 두려움을 유발하는 부모의 행동은 위협적인 것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우울증을 앓고 있거나,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부모가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자신이 보호받지 못하고 안전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합니다.
Ed Tronic 박사의 “Still Face Paradigm” 연구에서 그는 부모가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 아이에게 공감하지 못했을 때 어린 아이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부모가 어린 아이의 감정을 적절히 이해하고 공감해주지 못했을 때,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능력이 점점 저하됩니다. 이 패턴이 오랜 시간 계속된다면, 아이의 발달 과정에서 신경학적인 패턴이 변하며, 해당 개인은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인식하고 조절하는 능력이 저하되어 건강하게 상호 작용하는 관계를 맺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하지만 당신이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이해하고 나면, 그리고 관계가 시작되면 왜 이토록 이상한 반응을 보이는지 인식하고 나면, 자신의 인생의 주도권을 되찾고 더욱 온전한 관계를 맺는 방식을 배우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
• 당신의 감정이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정확한 지표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세요. 당신이 현재 느끼는 불편한 감정은 당신의 연인이나 가까운 친구로 인해 생기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관계 상대방은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에서와 같은 계기(trigger)일 뿐입니다.
• 상담사의 도움을 얻거나, 다양한 자기 계발 프로그램을 통해 당신의 깊은 감정과 인식 과정을 드러낼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찾아가 더욱 중립적인 관점을 형성하고, 이어 당신의 감정과 행동을 더욱 적절하고 자신에게 유익한 반응으로 조절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 강한 감정이 느껴진다면 바로 반응하기 보다는, 시간을 두어, 필요하다면 며칠의 시간을 두면서, 자신의 감정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고, 상황의 사실 관계에 대해 심사숙고한 다음에,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행동할지에 대해 의식적으로 선택한 후에 행동하세요.
• 건강한 선을 긋는 연습을 하세요. 당신은 아마도 어린 시절에 건강한 선을 긋는 법을 보여줄 모델이 없었기 때문에 이 과정이 처음에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조용하고 안정감 있는 공간과 시간 속에 있을 때에, 당신이 관계에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며, 당신이 관계를 맺는 상대방으로부터 받아들일 수 있는 행동이 무엇인지, 그리고 받아들일 수 없는 행동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질문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후에, 이런 질문에 대해 스스로 내린 답에 대해 상대방에게 위협적이지 않은, 중립적인 방식으로 전달하세요. 무엇보다, 자신을 “기분 좋게” 해주어야 할 책임은 상대방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 상대방이 “안전하다”는 느낌을 충분히 받기 전까지는 당신의 내적인 혼란이나 과거의 트라우마에 대해 함부로 털어놓지 마세요.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많은 정보를 드러내고 나면, 오히려 불안해지면서 도망가고 싶은 느낌을 들어 관계에서 다시 거리를 두기 시작할 것입니다. 필자는 상담 활동을 하면서, 트라우마의 피해자가 너무 빨리 자신의 트라우마에 대해 드러내려고 하면, 내담자가 자신에 대해 드러내는 속도를 늦추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러기 위해 내담자에게 필자가 왜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말해보라고 합니다. 물론 필자는 스스로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내담자 스스로 저에 대해 평가를 충분히 한 이후에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관계 속에서 도망치지 않고 버티는 연습을 하고, 관계가 끝났더라도 건강하게 이별하는 경험을 쌓으세요. 상담하는 과정에서 공포-회피형 내담자들에게는 상담사와의 관계가 가까워지면 할수록, 점점 불안해지면서, 상담을 피할 만한 이유를 찾게 될 것이라고 미리 말해둡니다. 이런 현상은 가까운 친구 관계나 연인 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당신이 이런 애착 유형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감정적인 반응을 미리 예측하여, 두려움이 밀려오더라도 도망치지 않고 그저 버티세요. 물론, 버틴다는 것은 상대방이 당신에게 실제로 학대를 가하거나 해를 끼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상대방이 당신을 해치고 있다면 당장 관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누군가 당신에게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감정을 표현한다면, 억지로라도 그 말을 감사하게 받아들이세요. 당신은 상대방이 당신에게 베풀도록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선물을 선사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관계가 끝나갈 때에도, 미리 도망치지 말고 그 관계의 끝을 지키세요. 어떤 관계라도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습니다. 관계에는 부침이 있게 마련입니다. 관계가 끝나갈 시점이 다가오면,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당신의 진심을 전달하고, 상대방을 놓아주십시오. 그리고 혼자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당신은 언제나 당신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이 글을 읽으면서 주변에 누가 이런 유형일까 둘러보고 있다면, 이런 유형은 친밀한 관계에 돌입하기 전까지는 티가 거의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또한, 이런 유형의 사람은 평상시에는 정상적으로 행동하다가, 위협을 느끼거나 중병을 앓거나, 처벌을 받거나 직장을 잃을 위기에 놓일 때 자기 통제 능력을 상실하는 것을 흔히 관찰할 수 있습니다.
또한, 유아기에 안정적인 애착 유형을 형성했던 사람이라도, 부모의 사망과 같은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공포-회피형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끝으로, 당신이 이런 유형의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다면, 인내심을 가지세요. 당신에게 상대방의 아픔을 모두 치유해줄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우선 받아들이십시오. 당신은 그들의 곁을 지켜주며 위안을 주고 지원해주며, 그들이 자신의 아픔을 스스로 되돌아보는 동안에 안전기지가 되어줄 수는 있습니다. 당신이 회피형 상대방과의 관계를 지속하고 싶다면, 아마도 당신을 “시험”하는 태도를 일부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회피형 상대방은 종종 부정적으로 당신에게 도전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당신이 자신을 거부하는지 아닌지 실험해보기도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회피 유형의 사람이라면 과거의 경험을 통해, 결국은 거절 당할 것이라는 것을 이미 학습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이런 행동을 있는 그대로 보아주고, 당신 자신에 대한 비난이나 공격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할 수만 있다면 (물론 이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죠), 상대방은 자신의 감정을 더욱 잘 조절하며 관계 속에서 친밀함을 쌓는 것에 대해 내성이 점점 생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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