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J

[INFJ] 외향 감정이 INFJ의 가치관에 미치는 영향

멜리비 2019. 6. 5. 08:14

INFJ는 타 유형에 비해 큰 그림을 그려 가며 그 안에서 자신이 한 몸 바쳐 일할 목표를 찾도록 설정되어 있는 유형입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INFJ 특유의 직관 능력에 별로 가치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매번 이런 이유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INFJ들 (그리고 다른 IN 유형들도 마찬가지)은 대부분 외향적인, 감각적인 성향에 가깝도록 설정된 사회에서 자신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며, 자신의 가능성을 전부 잠시 동안만 머리와 마음 속을 스쳐 가는 이미지와 느낌, 통찰에 실어 결국은 실현되기 전에 놓쳐버리며, 한 평생을 그저 흘려 보내기 쉽습니다.

INFJ들의 발달된 외향 감정이, INFJ가 삶의 중심점을 찾지 못하고, 주변에 그저 휘둘리다가,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살아가게 되는 데에 기여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외향 감정이 우세한 유형은 언제나 타인의 입장에 자신을 대입하여 이해와 배려를 베풀면서 집단에 기여하고, 자신이 소속된 집단의 화목함이 깨어지지 않도록 사람과 사람 간에 관계를 자연스레 조정합니다. 굳이 이렇게 하겠다고 마음먹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행동이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그래서 자칫 상응하는 이해나 배려를 베풀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빼앗기기도 하며, 타인의 욕구와 이상에 매몰되어 자신이 목표하는 것, 자신이 중시하는 것에 대한 초점을 놓쳐버리는 수가 있습니다.

또한, 외향 감정은 가치관을 내면에서 찾기 보다는, 주변 집단에서 찾는 경향이 강합니다. 내향 감정을 주기능, 혹은 부기능으로 장착하고 있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에, 사회화가 되기 이전, 어린 시절부터 자신만의 분야에서 일찍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이 마음에 들어 하는 한 분야를 발견하고 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한 길로 달려나가도록 설정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외향 감정을 주로 사용하는 유형들은 어린 시절 자신의 마음 속 목소리보다는 주변 집단에서 주어지는 가치관을 내면화 합니다. 외향 감정이 강세인 ESFJ나 ISFJ의 경우는 특히, 주변 집단에 기여하면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 받습니다.

하지만 INFJ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내향 직관이라는 묵직한 비밀을 안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외향 감정의 영향으로 주변 집단에 쉽게 동화되어 ESFJ나 ISFJ와 마찬가지로 무난하게 생활하는 듯 보이지만, 주변 집단의 가치관이 조금씩 어긋난다고 느끼기 시작하면, 강렬한 고집이 느닷 없이 나타나 주변을 놀라게 하기도 합니다.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INFJ라면 이런 고집(=똘끼)이 심하게 나타난 적이 없더라도, 가까운 지인들은 이미 당신이 어딘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필자는 오래 안 지인들에게서 “멘탈이 강하다”는 멘트를 종종 듣는 편입니다. 주변에서 조금만 못마땅해 하면 밤새 고민하는 ESFJ나 ISFJ와는 성향이 극명하게 갈리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현대 한국 사회에서 주어지는 가치관은 무엇일까요? INFJ들이 워낙 다양한 집단에 여기저기 숨어 있다 보니 각자 주변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습득하고 있는 가치관은 서로 다를 것입니다. 필자의 경우, 소속된 집단에 무난하게 어울리며, 둥글둥글한 이미지를 갖추고, 직장에서든 집안에서든 주어진 일을 책임감 있게 해내며,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여행이나 맛집 등에 관해 적당히 유행에 맞추어 소비 생활을 이어 나가는 것이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삶의 방식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INFJ에게는 이런 삶의 방식이, 어딘지 모르게 너무 가볍게 느껴지며, 주변에서 말하는 “행복한 인생” 이외의 무언가가 더 있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을, 어느 유형보다도 더욱 강하게 받는 것 같습니다. 필자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사회 생활을 해 나가며, 매일 매일 주어진 테두리 안에서 일을 열심히 하기만 하던 시절, 제자리 걸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마음이 죽어가는 느낌으로 지냈던 것 같습니다. 이는 내향 직관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리고 일상 속에서 아직 기능을 하고 있지만 않지만, 의식 속에 거대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INFJ는 한국 사회를 무난하게 살아갈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활은 어딘지 모르게 불편합니다.

이전 글에서 내향 직관이 충분히 기능을 하지 않는 INFJ는 외향 감정이나 다른 부차적인 기능에 기대어 인생을 꾸려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런 상태의 INFJ는 내향 감정이 우세한 유형에 비해 자신만의 가치관이 무엇인지 알려고 할 때, 가장 먼저 주변 집단에서 찾습니다. 경험이 충분치 않아 자신감이 부족한 INFJ일수록 주변 집단에 휘둘립니다. 결국 INFJ는 주변인의 가치관, 주변인의 목표, 주변인의 꿈을 위해 매일 맞지도 않는 옷에 자신을 구겨 넣어 가며 헌신하지만, 마음은 언제나 불편한 것입니다.

INFJ가 인생을 충만하게 가꾸어 나가기 위해서는, 외향 감정의 느낌에서 벗어나 중심을 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타인의 감정, 집단의 가치관에 동화되려는 자연스러운 성향을 잠시 내려 놓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는데, 이는 내향 직관이 아직 발달하지 않은 INFJ에게는 사실 힘에 부치는 일입니다. 자신이 소속된 집단 밖에서 가치관을 함께할 만한 사람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그것이 어려울 때에는, 요즘 세상에는 언제든지 인터넷을 통해서도 자신이 동화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고도 봅니다. 여러 사람일 필요도 없습니다. 때로는 단 한 사람의 따뜻한 인정만으로도 나의 가치관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또한 외향 감정에 반하는 일이지만), 싫은 일은 거절하는 연습을 따로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 마음의 절반만 차는 모임에 참석하는 것이 득도 실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몇 번 경험해 본 후에 묘하게 맞지 않는다면, 그냥 거절해야만 우리가 원하는 삶을 가꾸어 나가는 데에 필요한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습니다. 필자는 특히 내향 감정에 충실한 친구를 두었을 때에 거절하는 연습을 많이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온 마음으로 원하지 않는 것은 단숨에 거절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나에게도 쉽게 거절할 권리 같은 것이 생기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외향 감정을 접어두고, 거절과 비판과 냉철함이라는 황무지(?)로 여행을 떠나보는 것이 어떨까요. 그리고 그 여정 동안 나의 큰 그림, 혹은 인생의 목표, 그리고 확고한 가치관을 갖추었을 때 외향 감정은 나를 쥐고 흔드는 주인이 아니라 나의 큰 그림을 완성해줄 오른 팔이 되어줄 것입니다.